관계의 시학 3.1

관계의 시학
에두아르 글리상 Eduard Glissant

*이 글은 출판이 아닌 개인 번역작업이자 예술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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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히 장소, 열린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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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테이션 시스템은 동일한 구조적 원리에 따라 미국 남부, 카리브 제도,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 그리고 브라질 북동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인도양에 있는 나라를 포함하여) 나라들에 걸쳐 확장되었고, 패트릭 샤마주 Patrick Chamoiseau 그리고 라파엘 콩피앙 Raphaël Confiant 이 말한 크리올 créolité [creoleness]의 영역-크리올의 지역변이적 역사, 정치을 구성했다. 다양한 정치 역학 관계에서 지역마다 형성된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왜 동일한 조직이 경제적 생산 리듬을 창조하고 생활 형식의 기초를 형성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것은 공간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이다.

시간과 관련하여, 또는 이러한 공간들에 융합된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련하여, 두 가지 다른 질문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시스템의 진화에 관한 것이다: 왜 어느 곳에서도 그것의 지속성이 발견되지 않을까? -어떤 사회적 구조도 그것에서 유기적으로 파생되지 않고, 일관성있거나 모순된 반향을 가지고, 어떤 영구적인 측면에 세겨지지 못했을까?  플랜테이션 시스템은, 스스로를 대체할 수 있는 자체적인 방법을 생성해내지 못한 채, 잔혹하게 또는 점진적으로 모든 곳에서 붕괴되었다. 두 번째 질문은 더더욱 놀랍다: 어떻게 그렇게 취약했던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현대 문명의 궤도로, 이 단어가 앞으로 우리를 지탱해줄 수 있는 편협하지 않은 의미에서, 보여지는 것을 야기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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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플랜테이션에 대해 알고 있는 몇 개의 연결된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그것은 사회적인 피라미드 안에서 형성된 조직이고, 울타리 안으로 밀폐되었으며, 겉보기에는 자급자족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종속적인 형태를 가지며, 노예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개선할 수 없는 생산 기술 방식을 가지고 있다. 

카리브해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노예들. Copyright. Part of the Michael Graham-Stewart slavery collection

피라미드 조직: 1848년 이후, 어느 곳을 가던 노예들의, 후에 노동자가 된, 출신은 아프리카계였다- 카리브 제도에서는 힌두계도 있었다; 중간 계급인, 관리인, 행정관, 그리고 감동작 등이 유럽계 출신의 남성으로 고용되는데, 이 세기에 일부 남성들은 유색 인종들에 의해 교체되었다-다시 한 번 카리브 제도에서; 피라미드의 정상은 농장주, 식민지 개척자, 혹은 안틸리스에서 불렸던 것 처럼 베크 békés [초기 이주자들(주로 프랑스인)의 후예] 였는데, 그들은 백인 가-귀족정치를 구성하기 위해 애썼다. 내가 “가-”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어느곳에서도 시간 개념의 주입으로나 절대적 혈연관계의 정당성에 의해 신성화된 전통 안에 뿌리를 내리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플랜테이션은, 은밀한 방법과 관습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잇따라 일어나는 곳으로부터, 큰 영향을 주는 어떤 전통도 확립하지 못했다. 

밀폐된 공간: 각 플랜테이션은 울타리로서 경계를 지었는데, 이를 넘어가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서면 허가 없이 또는 카니발 기간 같은 일부 의례적인 예외로 인한 승인 없이는 떠날 수 없었다. 예배당이나 교회, 보급품 배분을 위한 (후에 식료품점이 될) 창고, 진료소 또는 병원: 모든 것이 폐쇄된 원 안에서 처리되었다. 이제 우리가 이해해야할 것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루이지애나에서 마르티니크, 레위니옹Réunion 섬에 이르기까지, 한 쪽 끝에서 다른 지역까지 일련의 자급자족 형태들이 유사점을 가질 수 있었을까? 만약 각 플랜테이션이 폐쇄된 독립체라고 간주되는 경우, 무엇이 유사한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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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노예제도의 현실이다. 그것은 생산 기술의 부진에서 확실해 보였다. 기술적 무책임에서부터 극복할 수 없는 경향이, 특히 노예 소유자들 사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기술 혁신, 기계화, 그리고 산업화가 일어나자, 예를 들어, 미국 남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미 손쓸 새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회 역학은 지팡이 흔적, 사탕수수 사이길 [‘La Rue Cases-Nègres’ Joseph Zobel의 소설제목과 동일한 표현], 목련들이 핀 골목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플랜테이션의 경작과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노예나 그들의 가까운 후손들에게는 이러한 기술적 무책임과는 아무런 관련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시스템의 가장자리에서 매일의 생존을 스스로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작은 점령지의 광범위한 발전, 또는 아틸리스 제도에서 쟈브 djob 라 일컫는 습관적인 잡동사니식 경제를 초래했다. 기술적 무책임과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 운영으로 나뉜다: 이동성과 단편화는 시스탬의 심장에 놓인 채 그것을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불확실한 증거, 매우 취약한 기념물들, 종종 불완전하고, 삭제되었거나, 혹은 애매한 기록물들을 가지고, 이 잔해를 천천히 살펴볼 것이다. 이미 우리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랜테이션은 오늘날 관계의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초점 중 하나라는 것이다. 침묵 또는 공언된 비인간화의 지배와 억압의 그 우주 안에서, 인류의 형태는 완강하게 지속되었다. 이 뒤떨어진 지점에서, 모든 역동성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현대성의 움직임을 감지해낼 수 있다. 우리의 첫 번째 시도는 단지 어떤 모순들을 짚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모순들 중 하나는, 사회 계층제의 광적이며 세밀한 세세한 것과 상응하는 냉혹하게 유지되어지는 인종간의 계층제이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복합성들로 남거나 그대로 진행되어져버리는 이것은 우주의 정리정연한 구성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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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는 봉인은 플랜테이션의 명백한 규칙이었다. 촘촘한 사회적 장벽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도 불구하고 정서의 모습들 사이엔 불가역 단절이 존재했다. 생존 페르스와 포크너는, 내가 계속해서 뒤돌아보게 되는, 플랜테이션 지역에서 태어난 두 명의 작가이다. 이 둘은 나의 질문에, 이 단절을 평가할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엘로지’ Éloges 에서 유명한 서술을 (그것이 만약 서술이라 한다면) 되짚어 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오래 기억할 것이다

말없는 얼굴들, 파파야의 그리고 지루함의 빛깔들

우리 의자들 뒤에서 기력이 쇠한 별들처럼 잠시 멈추었다 . . .

그 파파야와 그 지루함은-사람들을 사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플랜테이션에서 감정적인 삶을 지배한 급진적인 분리를  (불가능한 아파르트하이드 aparheid [인종 격리 정책] 처럼) 드러내는 만큼 작가의 이질감을 그닥 강조하지 않는다. 또한 흑인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던 포크너의 경우, 내적 독백을 쓰려하지 않았다. 반면에 그의 작품 속 인물들 중에서 몇몇 물라토[흑백 혼혈아]의, 그리고 이제는 고전이 된 그의 역작, ‘그 소리와 그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의 시작에서 심지어 바보 벤지를 위해 독백을 강행했다. ‘모래 먼지 속 침입자’ Intruder  in the Dust 에서 주요 영웅인 흑인 루카스의 경우에 저자는 그들 내부화하지 않았다; 그는 수평선 위로 채워진 실루엣의 몸짓과 자세들을 통해 전반적으로 묘사되었다. ‘새벽의 침입자’는 본질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보다 현상학적 접근에 대한 시도였다. 같은 소설에서 포크너는 남부 흑인에 대한 화자의 이해- 또는 그 이해의 결핍-에 대해 분명히 얘기한다: “왜냐하면 다른 백인들이 그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가 루카스 보샹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연한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계층에서 버림받게 되며, 자신의 작품을 접한 미국 흑인들에 의해 오해 받은소설가가 불가능에 대한 예감이 머릿 속에 떠오른 것처럼 말이다. 그 단절은 여기서 그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단절은, 다양한 인구 단계들로 범위가 결정지어진 영토들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들 서로가 이질적이었다는 주장은, 플랜테이션의 갇혀진 내부에서 불가피한 악의적인 것들은 고려하지는 못했다. 라바트 신부가Father Labat 쓴 글의 집요하며 냉혈적인 필력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안틸레스 군도의 연대기 작가의 글에 독자는 숨겨진 호기심을 느끼고, 매료되어지며, 마음을 졸이고, 그리고. 노예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가 진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 강박감까지도 느낄 수 있다. 공포, 공상, 그리고 어쩌면 조금도 연루되지 않으려는 명멸하는 의지가, 그 이후의 반란과 억압의 저류를 형성했을지도 모른다. 긴 순교자 명단도 의도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긴 인종 혼혈화métissage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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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모순은 플랜테이션의 자율성에 대한 의지를 현실, 외부 세계에 의존적인 관계와 대비시킨다.  세계와 나란히 성장하는 이 교류는 상품 교환의 기본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대개는 손해를 보는 정도였다. 현물 또는 동등한 교환 가치로써의 지불은 경험도 자본도 축적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곳에서도 농장주는 시장, 국제적인 교통 수단, 독립적 자금 시스템, 또는 해외 시장에서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으로써 충분히 견고하고 자율적인 기관들을 설립할 수 없었다. 플랜테이션의 존속은, 역설적으로, 모든 외향적 경향을 가지고서도 스스로 고립화 되어갔다.  그들은 본래 다른 어떤 곳에 의존적이다. 그들의 수출입-적인 관행에 있어서 기성 정치는 내부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실은, 사회적으로 접근해보면, 플랜테이션은 정치적 결과물이 아니라, 환상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 폐쇄된 장소, 고독한 곳 Locus Solus 에 그 내부에 더 가까이 접근한다면, 그곳에 어떤 파장이 있을지 상상해보려고 노력하며 그 안에 있는 기억이나 내장의 소리까지 청진하게 되면, 우리가 찾던 그 모순은 광기가 될지도 모르다. 현 시점에서는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어떤 설명도 여기서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우주에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에 대해 충분히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다. 북쪽에서 남쪽, 그리고 서쪽에서 동쪽까지 동일한 삶의 조건들이 반복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오히려 다른 종합적인 측면으로, 플랜테이션에서부터 직간접적으로 발생한-구술과 서면의 표출-문학에 눈을 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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