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학
에두아르 글리상 Eduard Glissant
*이 글은 출판이 아닌 개인 번역작업이자 예술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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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내려진 방랑
생존 페르스 Saint-John Perse 에게 보편성이란 것은 선택적이었다. 단순히 그가 황량한 기분으로 단정내린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상황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보편성의 생각을 피난처로 삼은 누군가처럼), 확고하고 쉬지 않으며 자기 앞에 놓인 것을 투영시켰기 때문이다. 생존 페르스도 물론 그의 동시대이었던 수많은 프랑스 시인들이 스스로를 투영했던-다양성으로 가득찬 다른 어떤 곳으로 떠났다. 그리곤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이곳”이라는 주권을 찬미하는데 꽤난 기여를 했다.
그에게 ‘이곳’은 “나보다 더 백인이고 시인이었던, 유럽의 내 중국여인 .” 이다. 그곳은 생존 페르세가 그의 시학을 발생시킨 (과들루프) 그의 첫 울음이라 주장하는 곳이 아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반대로 이상적인 출처로써의 멀리 떨어진 기원의 장소이었다. 시는 선천적 사실에서가 아닌, 생각과 욕망 안에서 근원을 가지고 있다.
그의 ‘다른 어떤 곳’은, 대조적으로, 억측상의 모든 장소 위, 어느 섬, 시인의 출생지조차 명백하게 적혀져 있는 곳이다. 그의 어떤 곳은 다가가려는 꿈에 의해 그리고 만족하려는 충동에 의해 물들여져 있는, 세글랑의 것과는 달랐다. 그곳은 이미 모든 가능한 어떤 곳에서의 근거로, 유년 시절에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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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곳과 가능성 사이의 화합에 정진하기 위해, 시인은 자신에게 불가능한 어떤 것: 안틸레스 군도에서의 출생한 집으로부터 영구적인 절제를 요구했고, 마치 이 첫 번째 금욕에 기인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는 사전에 협의된 어느 ‘이곳’에서부터 단호한 거리를 유지했다.
생존 페르스의 엄격한 유랑은, 되돌아올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곳’ (유럽)과 떠나두고 가는 다른 곳 (안틸레스)에 내기를 건 여로를 정했다. 그는 세상에서 식민지적인 방랑을 용납할 수도, 내가 ‘그’만큼 오랫동안 생각했 듯이, 랭보가 시도했던 방랑자가 되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불가능한 것으로부터 조물하면서 자기 안의 보편성을 드높였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보편성이 이국주의와 무관한 이유이고, 대신에 그것을 신랄하게 비평하고 본질적인 비실재의 역활을 한다.
따라서 그의 시학은 준비된 연극으로서 전해져야만 한다. 다듬어지지 않고 기초적인 수준의 분석에서는 그것의 모순을 강조할 수 있다: 식민지 지주 계급의 후손인 생존 페르세는 자신을 고귀한 재산의 프랑스인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고; 크리올의 구어에 의해 길러진 그는 가장 순수한 프랑스 스타일로 자신을 인식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게다가 더 나아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형식적이고 옻칠된 표면 아래서 난 상처를 상상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오만하고 융통성없는 성격으로 고상해지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인의 실제적인 교훈은 훨씬 더 깊이 들어간다. 이는 작가의 생애와 활동의 기록에 놓여 있는 평범한 지역들을 뒤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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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페르스는 자신이 태어나고 투영된 장소의 역사에 대한 어떤 종류의 “파악”마저도 관두고 영원히 주어진 미래로, 그가 서있는 곳에서 모든 것을 투영한다. 이런 미래의 흔한 장소는 이름, 시인으로서의 그의 이름, 의도적으로 위조된 ‘단어’이다. “나는 나의 이름에서 살 것이다.”
이 단어들로 그는 서술의 진부함이 아니라 새롭고 독창적인 미학적 형태, 세계의 서술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글이 곤충학자, 지도 제작자, 사전 편찬가로서의 그의 상당한 노력으로부터 힘을 더 받는 이유이다. 물질성의 엄격함과 그의 사전적 지식은 통제된 증식을 세상의 흘러넘침에 엮어내고 우리를 위해 스스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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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앤틸리스 제도의 기억에 새겨져 있는 장소 중 하나는 밤의 그림자들이 이야기꾼 주위로 둘러진 원이다. 그 고리의 경계에선 그 말들을 전해줄 아이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들의 몸은 낮의 열에 의해 달아져 올랐고, 쉽게 지나가지 않는 이 시간에 그들의 눈은 커져만 간다. 이 아이들은 어떤 관용 어구도 이해하지 못했고, 간접적인 암시도 알아채지도 못하지만, 이야기들을 가진 남자가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그는 그들이 언제 등골이 오싹해지고, 입이 공포에 쩍 벌어지고, 또는 언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웃을지, 재빨리 눈치를 챈다. 그의 목소리는 바다 저편에서 들려왔고, 그들이 부재한 아프리카 나라들의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벌벌 떠는 아이들을 자궁으로 끌어들이는 밤에도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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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람들이 생존 페르스의 구술성을 낭독법에 맞게 줄이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절대 무대 위에서 읊어질 수 없을 것이다. 언어가 혹으로 뭉쳐질 땐, 그 안에서 당연스럽게 펼쳐진 수없이 광대한 영역은, 뿌리 그루터기들로 이곳 저곳 막혀졌다. 당연한 것들이 낭독하게 되면, 그것은 즉시 토톨로지적인 투명성이 된다. 이 시인의 원문이 극장의 무대를 채우거나 정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도 자주하는 실수이다. 그의 일종의 구술성은 공적인 성질의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적인) 겸손에 해당한다. 그 아래에서, 내면의 목소리는 장황한 반복들을 엮어낸다. 이것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의 이해에서 읊어지는 구술이다.
그의 주위에서 밤을 요약해주는 원의 부재는 생존 페르스와 앤틸리스 제도의 이야기꾼 사이의 첫 번째 차이점이다. 그의 말 주변에는 횃불이 없다, 그곳엔 높은 평원이나 바다가 넘쳐날 때 솟아오르는 수평선을 향해 뻗은 손만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가능한 무한성이다. 목소리에 의해 만들어진 고리는 세계로 뻗어나가며 분산된다. 생존 패르세의 언어는 주위를 암시하는 바스락거리는 그림자들로 싸여있지 않는다;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들이 이미 익숙한 소리와 섞여가고 있을 때, 사막 여행자들이 불멸의 사막에서 출발할 때, 새벽을 맞이한다.
잃어버린 또다른 장소가 여전히 숨겨지거나 혹은 마침내 드러나는, 한 장소에 대한 찢겨진 기억을 생존 페르세는 다시 되붙이지 않는다. 앤틸리아 이야기는, 원래의 아프리카를 유지하려는 흔적을 바꾸고, 이전 나라에 대한 벅차오르는 것들로 메아리들과 맞붙으며, 그리고 투명한 단어들의 관성을 거부하면서, 우리에게 그가 적은 현실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유년시절을 축하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시인은 편안히 훑어 볼 수 있는 사진첩을 거부한다. 정말로 사라지는 기억이란 무엇인지, 그들이 우리의 고향이라고 하는 이 곳 (이 집)은 무엇인지, 그리고 “모든 사물”의 안개 속에 있는 이 고귀한 고독은 눈부시고, 폭발하고, 그리고 영원히 빛나는지. 생존 페르스의 작품은 (장소의, 사람들의, 유년시절에 보았던 것들의) 기억을 훨씬 앞으로 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구술은 듣는 이를 그림자의 가장자리로 초대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를 앞으로 다가올 결심을 향해 내던져 진다. ‘엘로게 Éloges’ 는 그림자 속에서 반복되어지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라 엄숙한 출발을 예고하는 긴장감이다. 이 시인은 자신이 항상 기억하던 것, 그가 뒤로 남겨두고 온 것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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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페르스의 작품들에는 바로크(baroque)라 불릴 수 있는 전체주의와 정-선율(the plainsong) 기술의 혁명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 협력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순응된” 바로크라고 확신한다; 즉, 그것은 어떤 언급과도 관계가 없고 또 그것에 반대할 것이다. 방향전환(détournement)이 그것의 유일한 기준, 또는 기본적인 특성이다. 그리고 주로 이동과 탈출의 경우인, 정-선율은 우리를 이 세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깨어있게 해준다.
따라서, 시인과 이야기꾼 둘 모두를 화해시킬 수 없도록 저질러진 것은 기억과 장소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앤틸리스 제도 위치는 생존 페르스에게 내게는 의심스러운 눈부신 명료함으로 보였을 것이다. 세세한 것에 (분산된 순간들의 시학들) 대한 기억들은 다른 어떤 것을, 카리브해 경치의 뒷배경 속에 오랫동안 흔들리는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이곳에 쓰여지지 않았었는가? 지속성을 순간적으로 파괴하는 폭발적인 작품이 이 순간에 있다, 이것은 나중에 회복되겠지만 보편성의 비호 밑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앤티리아 제도의 이야기의 구술, 이러한 (전심으로 삶을 이끌어왔던 이들의-“역사”에 대한-집단의 기억에 대한) 지속성의 동력은 장소의 세세한 것들을 상쇄한다. 지속성의 최선에 대한 집착은 현재의 폭발적인 눈부신 빛으로 어지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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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를 말해주는 사람인 생존 페르스에게 있어, 같은 길목이 기다리고 있다. 시의 혹독한 초월성에는 , 이야기의 교활한 체계와도 같이, 그곳에는 불가능한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구술성의 파열과 밀집이 있다: 후자의 장소는 그가 머무는 곳이며 전자는 그가 돌아다니는 세계이다.
거주자와 순례자는 같은 망명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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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페르스의 떠남과 방랑은 사람들의 역사들에 대한 거부로 해석되어야 하지만 그들의 위대함은, 헤겔적 의미로, 역사의 가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방랑은 뿌리줄기로 된 것 아니라, 의지와 관념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역사 혹은 그것의 부정, 어떤 것에 대한 직감, 그것들은 바로 생존 페르스가 그의 이름을 근거로 삼았던 서구적 사상의 양극이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의 조건은 일반화시키는 역사에 지배받지 않을 뿐더러, 영적인 장소 외엔 장소에 제한되지 않는 것이었다. 보편성은 이 영웅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화된 모델에 도전하더라도 그의 작품 안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이 열정이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모순들에 대해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 작품을 (왜냐하면 그 작품은 문제적인 시간과 공간에-앤틸리스 제도의 역사와 장소에- 이국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제약받지 않는 방랑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추진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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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페르스에게 있어서 시란, 비록 과거로부터 교훈을 서사적으로 엮어내진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는 관계의 시학을 예언하는 방랑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타인과의 새로운 연결 방식의 전조가 되어진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한 개인은 돌들을 모으고 생존 페르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 세계의 물질성을 짜낼 수 있다. 이것이 결국, 그가 빅터 세글랑을 만났지만, 똑같이 그러나 정반대의 방향으로, 지나치게 꾸민 그의 매너 때문에 의심할 여지없이 거의 말하지 않았고, 그들의 여행 일정은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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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는 세상으로 난 이 길에 우리보다 앞서 있다. 우리가 그를 따라잡을 때, 우리는 그가 여전히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항상 우리와 나누기 위해 우리의 고독한 표상들을-비록 그의 고귀한 단절에 얼어붙은 표상들일지라도- 그려내고 있음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