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학
에두아르 글리상 Eduard Glissant
*이 글은 출판이 아닌 개인 번역작업이자 예술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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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들
19세기에, 스페인어는 남아메리카로, 포루투갈어는 브라질로 펼쳐나간 후, 프랑스어와 영어는 그들 각자의 존경스러운 문화의 광범위한 확장을, 그리고 전세계를 성공적으로 동반했다. 예로 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또는 러시아어 등, 다른 서구 언어들은 식민지화에서의 몇몇 제한적인 시도에 그쳤고, 보편성을 위한 일종의 사명감을 발생시키는 자국-수출의 성향으로 몰려가지 않았다. 비-서구권의 언어에 대해서는, 케추아어, 스와힐리어, 힌디어, 혹은 중국어는, 그들의 시학은 세계 역사들의 진화에 관여하는 것에 어떤 암시도 두지 않고, 내생적이고 비-확산적으로 유지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을 경쟁하고 지배하려는-프랑스어-라는 한 언어의 제한된 틀 안에서, 무수한 시학적 양상에서 변형되어지는 발견에 의해, 그 문학적 생산이 부분적으로 결정된다는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프랑스어에 관한 한, 그 문제를 분명하게 하는 어떤 노력에 완강한 저항이 지속되어 진다. 모든 것은 마치, 이전의 패권을 교체할 준비가 되있는 전세계적 관계의 시학 속으로 들어간 순간, 그 언어 안에서 일하는 집단적 사고가 우월감이 아닐 어떤 참여도 인정하지 않고 타자성과의 관계를 은폐하는 쪽을 택한 것처럼 흘러간다.
일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로서 문학 이론가들은 19세기 초 프랑스 문학이 근대화에 진입하게 된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시학들을 정의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깊이 이론, 언어-그-자체의 실제성, 그리고 문자적 구조의 문제론이 그렇게 공식화되었다. (나는 비판적인 극적 효과를 위해 간소화해보았다.) 그들은 문학에서, 세계의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현대성의 완전한-지각 plein-sens 중 하나로 상호 변형을 위해 문화들이 서로를 식별하려는 행동에 의해서 제공되어진다는 것을 잊어버린 척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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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의 시학. 보들레르 Baudelaire 는 이런 시학 형태의 초기 영역을 탐험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인간이 자기 안에 품고 있는 한없이 깊은 것들에 대한 현기증나는 확장이었다. 이 서양인은 본질적으로, 그 당시 근대성의 진보를 억제하고 그것의 리듬을 제공하였다. 내부 공간은 지구의 공간만큼이나 무한히 탐험할 수 있다. 그가 인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종의 다양함을 발견함과 동시에 지식의 안정성의 주장은 어떤 곳으로도 이끌어갈 수 없었고 그가 다른 사람들을 알려준 것은 그가 자신을 알게 된 모든 것이었다. 그 결과, 보들레르는 시인은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에 대한 내성적인 주인이라는 낭만적 서정주의의 주장을 무효시켰고, 시인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할 수 있는 명확하고 분명한 교훈을 그려내는 것이 그의 힘이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이 낭만적인 낙원은 보드레르 숭배자들의 부패와 뗄 수 없는 악취에 의해 휩쓸려 갔다.
하지만 -심리학과 같은 깊이의- 바닥을 알 수 없이 깊은 시학은, 우회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보편적인 모델, 일종의 인류의 원형이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는다, 다만 그 모델은 그와 동시에 이 문제 안에 우리의 지식을 동시에 보장하고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려하는 것이다. 한 편으로, 이 둘은 이 지식의 지형을 뒤바꾸어 놓으려는 경향이 있다: 우선 주권적인 주관성(다른 누군가의 지식을-시선 또는 듣기-필요로 한)을 압수시키고, 그 지식을 이 주체에(어떠한 표현적인 지식의 구조 “속에서” 말하는) 넘겨주는 것이다.
언어 그 자체의 시학. 그것은 언어가, 마치 자신의 완벽함에 만족한 듯, 그와 특정한 주변 환경의 연관성을 열거한 대상을 받아들이기를 중단하고, 그것의 한계를 넘으려는 열성으로 오롯이 집중하며 그를 구성하는-오직 공학 기술만을 가지고선-원소들을 철저히 드러내는 순간을 용인한다. 이 실지는 장황하고 횡설수설하는 것 없이 진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횡설수설하는 것은-말라르메 Mallarmé도 알고 있었듯이-서술에 대한 절대적인 도전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발견하고 말하기보다는 동등함을 생산해는, 무엇이든 말해지고, 어떤 것도 보도되어지지 않는, 책같은 동등한 것을 만들어내는 문제이다.* 물론 어디든 갈 수 있는 유혹을 경험한 몰라메는 그의 힘을 오로지 이 언어의 총체성을 생산해내는데 바쳤다. 책으로써의 세상, 세상으로써의 책. 그의 구금된 영웅적 행위는 단어의 절대성 안에서 희망하고, 꿈꿔왔던 전체성을 축하하는 방법이다.
* Caribbean Discourse에서의 내 의도는 이 동등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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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그 자체의 시학은 정의상 주어진 언어의 한계치 내에서만 행사될 수 있는, 지식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몰라메의 교수이자 영어번역가로서의 그의 불안한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현재 모든 문학에서 싹트고 있는 다른 언어에 대한-무한히 가능한 언어들을 위해- 향수를 버리게 만들 것이다.
구조의 시학. 문자의 작성자는 자신의 작업의 질감 안으로 드러나보이기 위해 사라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삭제해낸다. 구조주의자들에 따르면, 이야기가 몰라메의 시학에서 제외되었듯이, 역사는 (이 단어가 서구로부터 주어졌 듯이) 문맥적으로 고려되어져야만 한다. 서구의 개척자들: 탐험가들, 상인들, 정복자들, 민족학자들-지성, 믿음, 그리고 법의 사람들-의 지배로부터 그것은 정당하게 벗어나기 때문에, 즉, 그 스스로를 만들어내는 세계를, 포착할 수 없이 미묘한, 포기하는 것 더욱 강조하게 된다.
사물에 대해 가혹한 실재보다는 중립적인 것, 급박해지는 입장, 허위로써 최종적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생각에 대한 경시, 문자 그대로의 지루한 것-이것들은 시학의 맥락 안에서 접근을 제공하여 현대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들과 연결되어 몇가지 요소들이다.
이들은 깊이의 시학, 언어과학, 문자 그대로의 노출을, 차례로, 열어본 낭만주의 이후로 그것의 문제점을 구상해보려는 권위에 의해 프랑스 문학의 주해에 연관되어졌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직 -눈에 띄지 않거나, 혹은 오히려 회피하고 있는- 우리가 부르게 될 관계의 시학이라는 또 다른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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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의 문화들은 그들 자신 사이에서의, 매우 가깝거나 상황의 변화에 역동적인 관계를 항상 유지해왔었다, 그러나 오직 근대 시대에서만 이 연결의 자연스러움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어떤 적절한 조건이 맞물려 져야만 했다.
세계의 끝에 다다른, 지리적인 의미에서의, 그 막연한 느낌은 모험의 그 어떤 요소, 아마도 다른 것에 대한 발견이 존재할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마저 제거해버렸을 것이다. 이 세기 초 이래로, 세계지도 위에 쪼그라드는 미개척 지역은 모험에 덜 매료되도록, 혹은 그것의 아름다움에 덜 예민해지도록 만들었고, 실존에 대한 진실에 더욱 기울어졌다. 그러고나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워졌다. 서양의 민족한은 이러한 필요성에 기반하여 세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해하다 라는 이 동사가 “파악하다” [comprendre] 라는 의미로 무시무시한 억압적인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근대성에 주어진-문화간의 접촉은 더이상 커다란 한 폭의 시간 동안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역사적으로 접촉과 교류들은 활발해졌지만 거의 감지할 수 없었다.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곳에 즉각적인 반향이 미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적 영향은 지역사회에 본래 일반적인 성질로 점진적인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개인은 아무데도 갈 필요 없이, 그의 공동체, 가족, 사회 집단, 또는 국가가 같은 효과에 의해 풍요로워지기 전에, 그 밖의 다른 것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닿아질 수 있다. 개인에게, 개인으로서, 즉각적이고 단편적인 이러한 반향은 빅터 스갈랑 Victor Segalen 이나 레이몽 루셀 Raymond Rousseau, 도니어 루소 Douanier Rousseau– 관계의 시초의 시인들-의 전조를 인가해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조건인 관계의 의식은 집단과 개인 모두를 포함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 안에 “알고” 있고 우리의 대부분의 개념들과 감각의 발달만큼이나 우리가 어떻게 진화하는가에 영향을 끼친다. 랭보의 “나는 타인이다” 는 역사에 있어서 문자 그대로이다. 우리 자신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식의 의식”은 우리를 열어주고 서로를 관계의 시학에서 당황스러운 배우로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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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토지, 남성과 여성이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고 알고 있게 된 순간부터, 관계는 역설적으로 절대자의 편협함에서 자유롭게 해준 절대적인 것을 (즉, 마침내 그 자체로 충분한 전체) 나타냈다.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의식은, 실현가능한 세계의 전체성 바로 위에서 즉각적이며 들여다보는, 전체라는 것의 연장선에서, 우리가 관계의 시학에 대해 말하며 우리는 더이상 ‘무엇과 무엇 사이의 관계’인지 추가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왜 다소 자동사처럼 기능하는 프랑스 단어 Relation 이, 예로 들어, 영어 단어 relationship 의 의미에 상응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관계가 단순히 이어지게 된 것뿐만 아니라 그것의 관계물과 관계되었던 것까지 알려준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것의 항상 근접해있는 진실은 이야기 안에서 주어진다. 비록 세계는 책이 아니지만, 사실상 세계의 침묵은 결국 우리를 귀머거리로 만들 것이다. 관계는, 인문학을 혼란스럽게 나아가게 하며, 지속되기 위해, 그 자체를 발행하는 단어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관계되어지는 것은 제약으로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그것은 강제로 접촉하고 말하게 된 관계물의 전체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프랑스 문학의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움직임”을 고려하는 것은 단지 즐거운 선택이 아니다. 아주 간단하게, 두 가지 조건을 합쳐지는데, 세계 위로 투영된 문화(세계를 지배할 목적의)와 보편적으로 제기되었던 언어(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의)이다. 이 두 가지 의도는, 후하게 인정된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이, 제국에 대한 생각에 절정에 이르렀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배의 환상 아래에서 살만한 세상이 추구되었고, 시학적 생각은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 제국은 전체성의 절대적 표명이다. 제국에 대한 생각은 선택적이다: 보편성으로 가져다 주는 것은 실현된 총체성의 양이 아니라 전체로 나타내지는 성질이다. 따라서 절대 지배권은 영토 전체에 걸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제국의 평화는 관계의 진정한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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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앞으로 내비춰진다. 마치 이전의 화살같은 유목주의의 궤적으로 전부 다시 되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이 시학적 움직임들은 궤적으로서 같은 공간에 위치되어질 수 있는데, 그들의 시학은 그것을 폐지하기 위해 이러한 궤적을 완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궤적들은 세계의 장소들과, 중심의 기능에 열거된, 외연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전체를 이어준다.*
이 궤적들 중 첫 번째는 중심에서 주변 외연들로 이끌어졌다. 빅터 스갈랑 Vitor Segalen 의 작품을 혁신적인 예로 들으려 한다, 그러나 비판적이거나 소유적이든, 인종주의나 이상주의자든, 광분적이거나 이성적이든, 자신의 시대부터 다양성의 외침을 경험한 이들, 상드라르 Cendrars 에서 말로 Malraux, 미코 Michaux 에서 아르투 Artaud, 고비뉴 Gobineau에서 셀린 Cèline, 클로델 Claudel 에서 레리스 Michel Leiris 모두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두번째 여정이 그 다음으로 형태를 이루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주변 외연들에서부터 중심을 향한 것이었다. 상상 속 근원이 세워진 다른 어딘가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시인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 반대 방향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하기 위해 힘들여 나아가며. 쥘 수페르빌레 Jules Supervielle. 세인트존 페르세 Saint-John Perse. 조르주 쉐하데 Georges Schéhadé.
세 번째 단계에서는 궤적이 폐쇄되고, 화살-같은 예상은 곡선으로 휘어진다. 그 시인들의 단어는 외연에서 외연으로 이끌고, 그리고 순환적인 유목민의 흔적을 재현해낸다! 즉, 모든 외연성이 중심으로 향하고, 나아가 중심과 외연의 개념을 허물어낸다. 이 모든 것은 작가의 작품, 스갈랑 Segalen, 케이트비 야신 Kateby Yacine, 셰익 앙타 디옵 Cheik Anta Diop, 레옹 공트랑 다마 Lèon Gontran Damas, 그리고 언급할 수 조차 없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발아되었다.
이 때 관계는 더 이상 궤적의 일련에 의해 만들어진 예언이 아니었고, 서로를 뒤쫓거나 좌절시키는 여로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그 자체로서 그리고 그 자체 안에서의 관계는 세계의 충분한 총체성 안에 새겨진 네트워크처럼 폭발했다.
* 나는 이 경로를 L’ intention poétique 에서 다루었었다; “하나에서부터 세계로-다양한 것에서 공통된 것으로-다른 누군가의 우리-우리의 다른 누군가). La lézarde에서 우리의 이질감을 평가하기 위해서, 나는 중앙의 관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사미르 아민 M.Samir Amin 은 중앙(생산과 제어)와 외연(수령)으로 구성된 세계 경제 이론을 개발했다. 그는 글로벌 시스템과 관련하여 자발적인 “분리”에서 나아가, 이 외연성들이 자기 중심적인 경제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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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갈랑의 결정적인 개념은 타인을 만나는 것은 시학의 상상과 이해를 과도하게 활성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순간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기 위해선 상-하위에 대한 질문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적해보자면, 스갈랑은 단순히 상대방을 도덕적인 의무에서 인식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미적 구성 요소, 진정한 관계 시학의 첫 번째 칙령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의 충격을 경험하는 그 힘은 시인을 구분 짓는 것이다. 가능한 모든 차이의 총체성을 셀 수 있는, 다양성은 세계의 에너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동화로부터,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수동적인 유행으로부터, 그리고 표준화된 관습으로부터 안전 장치가 되어져야만 한다.
스갈랑은 민족학적 연구, 선언, 변론과도 같은 소설을 썼다, 그는 고갱 Gauguin 의 사고 과정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는 또한 색다른 것으로부터의 어리석은 기쁨이 아닌 낯설고 독특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이국주의에 대한 이론적 에세이의 주요 글을 명확히 전했다. 그리고 말라르메 Mallarmè가 그의 책을 끝까지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스그랑은 그의 주요 쟁점은 다행히 유지되어진 반면 그의 기초 작업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 시의 이론은 표출에 저항력이 있다.
아시아, 고조되어지는 위기들을 따라 연결됨과 영속성을 띄우는 또 다른 땅, 스갈랑, 클로델, 그리고 생존 페르세 이 세 명의 (다른 사람들 중에서) 시인들은 서로를 만났거나 충족시켰다. 그들의 작품의 중요한 부분은 어디선가 유희되었다. 그러나 생존 페르세와 스갈랑은 다른 방향의 길을 택했다. 페르세는 그의 고향인 과들루프 Guadeloupe 의 풍경인 엘로게스 Éloges 를 기억 속에 고정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작업은 그것이 얼마나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지와 상관없이 빠져나갔다. 반면에 스갈랑은 다른 것을 향해 가고, 어딘가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 어딘가에서 태어난 페르세는 같은 곳-중심을 향해-돌아갔다. 그는 프랑스어의 보편성을 선언하고 그 언어를 그의 나라로 선포했다. 이를 뒤이은 시들은, 마지막까지, 선택된 보편성이 속삭이는 대성당을 세우려고 시도했다.*
* 이 시인의 뿌리 내린 방랑은 다른 곳에서 논의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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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조르주 쉐하데의 시에서: 공간을 채굴하는 것, 잘 알려진 지리의 속박을 풀어주는 환상적인 환상, 예언적으로 ‘관계의 장소’였던 레바논의 극적인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그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들려준다. 언어의 절묘한 그 일시적인 중단에서 다시금 표현되는 것은 지구와의 단절이다: 단어들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상태-그것은 결국 유일하게 가능한 권위인 프랑스어의 시적 우아함에 합류되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 노력의 종류는, 파토스가 청재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훨씐 덜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그것의 선구자들에게 돌아오는 시도들을 했고, 솔직히, 언어를 통해 다시 통합되었다: 파르나시안 Parnassians, 르콩테 드 리슬레 Leconte de Lisle, 그리고 호세 마리아 에레디아 José Maria de Heredia 등이 그 예이다. 헤아릴 수 없는 모험을 세지 않는, 전반적으로 완벽함과도 같은, 다른 곳으로부터의 또다른, “그의 이름 안에 살고 있는” 페르세 같은, 시인은 언어를 그의 나라로 만들었다: 로트레아몽 Lautréamont.
이와 같은 동일과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은 시인들을 위험에 빠뜨렸지만, 급증하는 인구들이 그것의 공식화를 쓸모없게 만들자마자 절망적으로 평범해졌다. 융합된 역사들은 마찬가지로 세계 문학의 분견대와 힘을 합쳐서, 같은 언어 “안에서” 표현의 새로운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카리브해, 마그레브, 그리고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들의 시인들은, 추진력의 방향이 되어야하는 다른 어떤 곳으로도 이동하지 않고, 중심으로 되돌아가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다양한 국가, 민족, 인종의)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나타낸 대도시 지역에서 작품을 만든다. 오래된 확장 궤도와 여행력의 정신성은 (항상 파리에서 예루살렘이나 그 밖의 다른 곳으로) 세계의 실현된 긴밀함에 귀결된다. 우리는 관계의 동등성들로 들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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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들을 쌓아올린 프랑스어로 쓰여진 문학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경향에 관한 수많은 일상사를 축적한 나의 변명은, 아마도, 나의 주제인- 전세계 관계의 얽힘-에 대한 올바른 접근일 것이다, 그리고 관계의 시학에 관한, 경향에 대해 말해온 거진 모든 것이 단편적이고, 말수가 적고, 고집스럽게 눈이 먼 방식으로 수행되어져왔다: 세계의 수평선을 향한 감각의 일직선상 투영, 대도시들과 식민지들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수치화.
일상사들을 쌓아올린 프랑스어로 쓰여진 문학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경향에 관한 수많은 흔한 일들을 축적한 나의 변명은, 아마도, 나의 주제인- 전세계 관계의 얽힘-에 대한 올바른 접근일 것이다, 그리고 관계의 시학에 관한 경향에 대해 말해온 거진 모든 것이 단편적이고, 과묵하며, 고집스럽게 눈이 먼 방식으로 수행되어져왔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강조했듯이, 이러한 궤적들은(여기 유럽에서 다른 어딘가로) 본래 그들의 존재를 이루었던 어제의 무언가, 즉, 세계의 수평선들로 향한 직선적 감각의 투영, 대도시들과 식민지들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수치화를, 폐지한다. 이론가들의 생각은 이 폐지를 제재하는 것을 꺼려하고-그렇기에 그것의 보루들을 폐쇠한다. 마치 덮쳐오는 세계를 영리하게 한 발자국 옆으로 피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만을 위한 방호물을 고안해낸다.
게다가, 관계의 시학들은 영원히 추측해야하는 상태로 남아있고 어떠한 이념적 안정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는 언어가 우수하다고 믿음으로 연관지어지는 편안한 보증과는 반대된다. 시학은 잠재되어 있고, 개방하며, 의도되어진 다중언어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과 직접 접촉하게 되는 것이다. 이론가들의 생각은, 기본과 근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들과 사실인 것을 결합하고, 이 불확실한 길들을 피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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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순환과 그 행동는 더이상 주어진 사람들이 아닌 지구의 진화를 추축한다. 그것 역시 흔한 일이며, 다시 말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것 위해, 매번 다른 시각에 기초하여 작동하는 프랑스 문학 안에서 정확히 짚어낸 이 행동을 알아야만 한다. 인문학의 모든 표현은 세계의 요동치는 복잡함 위로 드러낸다. 여기서, 오직 진실되게 안전한 각자의 전체성만이 다양성의 에너지를 보장해줄 때, 시적 사고는 개개인을 보호한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개개인은 완전히 자동사적인 방식으로, 즉, 마침내 모든 것이 가능한 각자의 전체성을 실현함으로 부합되는, 관계에 대해 설정한다,
앞으로, 우리가 관계의 시학들이 서로 얽히고, 더이상 순환 내에서 내접되어지는 것을 투영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다시 자신에게로 되-굽어진 에너지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굽어지거나 굴절된 궤적 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많고 다른 주최들 아래서, 세계의 많은 다른 지역들에서 비밀로 부쳐진, 얼마나 많고 다른 불확정한 일들이, 지구 전체를 조직하면서 우리가 여기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을 마주치게 되었는가? 그러고 나서, 충분한 순환성 안에서, 우리는 줄어들거나, 단순화되거나, 혹은 평범해질 수 없는 전체만큼이나 복잡한 세부의 모든 티끌들로 혼돈의 미학을 밝혀낼 수 있는 상상을 한다. 이러한 각 부분들의 활동 경향은 다른 모든 활동 경향들을 말려들게 한다. (다양한 국가, 문화, 인종의)사람들의 역사는 이러한 역동성으로 이끌어져 왔다. 그들은 이미 그 순환성에 맞닿아 있었기에,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기 위해 그들만의 기세를 중단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직선형의 운행에 혼자의 힘으로 올라타는 것을 넘어, 자기 단절과 재연결을 실천하는 세계적인 역학에 일치되어지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계승-되어-지속’할 수 없었다.
우리는 더이상 플래쉬를 터뜨리는 것으로 우리 내면의 전체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는 침전물의 축적을 통해서 접근한다. 공동체의 신성하고, 건국적인 서적들의 첫 번째 원칙 중 하나인, 지속성의(되풀이 되서 나오는 또다른 주제) 시학이, 다시 등장하여 당시의 시학들로부터 계보를 이어받는다. 플래쉬들을 터뜨리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아직 오지 않을 전체성을 꿈꾸거나 갈망하는 사람의 전율이다; 새벽이 ‘사람들’의 연결된 역사를 통해 보여질 때, 지속성은 이 전체성을 살아내려고 시도하는 이들을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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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당신의 각본이 모습을 갖추는 나라에서 침전물은 쌓이기 시작된다. 관계가 보편성의 오래된 개념을 대체하기 위한 순수한 추상적 표현이 아닌 것처럼, 그것 또한 어떤 애큐매니컬의 분리를 암시하거나 승인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의 지형은 세계의 지형이다. 그러나 그 최전선은 탁 트여있다.
카리브해는, 내 견해로는, 관계가 가장 활발하게 드러내는 곳 중 하나로, 힘을 모으는 것처럼 보이는 폭발적인 지역 중 하나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 곳은 항상 마주치고도 못 본 척 지나가는 장소였고, 동시에 미국 대륙을 향한 통로이기도 했다. 육지로 둘러싸인 내해인 지중해 연안(그리스어, 히브리어, 그리고 고대 라틴어와 이슬람어의 출현으로, ‘하나’를 연상케 하는) 과 비교해서, 카리브해는 그와 반대로 활 모양으로 흩어진 섬들로 폭발된 바다이다. 회절-시키는 바다. 카리브해나 태평양의 군도의 현실은, 불필요하게 그들의 상황에서의 어떤 이점 따위를 유추하는 것을 제외하고, 관계의 구상에 있어 자연 그대로의 실례를 제공한다.
카리브해에서 일어났던 일은, 크리올화 creolization 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데, 우리를 가능한 가장 가까이 관계의 개념에 근접시켜준다. 그것은 단순히 만남이 아닌 하나의 충격(세글랑의 표현에서), 혼혈화 métissage 이며, 각자가 그곳이나 다른 곳에 있거나, 뿌리-내리고 개방되고, 산에서 길을 잃고 새롭고 바다 아래서 자유로우며, 조화되고 방랑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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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화 métissage 를, 일반적으로 말해서, 두 명의 다른 사람의 만남과 합성으로 가정한다면, 크리올화는 한계가 사라진 혼혈화처럼 보인다; 그것의 요소들이 산만해지고 그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혼혈화의 특정한 형태는 연속적으로 집중될 수 있는 반면, 크리올화는 회절되어진다. 여기서 이것은 더이상 섬이 아닌 육지에서부터 외부로 터져나온 것에 대해서 몰두하려한다. 항상 개방되어 있는 특질로 구성된 이들의, 크리올 언어(혼성어)에서 가장 명백한 상징은, 아마도, 우리가 정의한 만큼이나 상상해야하는 것의 변수 체계에따라 절대 고정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국어주의의 모험으로, 문화의 형용할 수 없는 파열을 따라 크리올화는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문화의 폭발은 그들의 흩어지거나 상호적으로 희석되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의, 강요된 것이 아니라 공유할, 동의에 대한 폭력적인 표시이다.
아메리카 대륙 전연에 걸쳐, 많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점이 적용된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문학들을 위해 기술된 이러한 여행 일정들이, 그것의 공통된 뿌리줄기인 영어와의 연관성으로 미국의 문학에 의해 오랫동안 여행되어져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부에서 헨리 제임스 Henry James 와 중심까지; 월트 위트먼 Walt Whitman 와 관계의 시학 전체에서; 미국 흑인 시인들과 다름의 단언에서; 중심같이 가정된 주변부의 구조, 개개인에서부터 일반화되지 않은 보편성에 이르기까지,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실패한 시인”)과 함께, 그의 작품은, 그가 살기로 선택한 미시시피 주의 옥스포트 시 Oxford, Mississippi 의 문학적 쌍둥이인, 요크나파타파 군 Yoknapatawpha County 의 “우편 우표 postage stamp”의 한계를 결코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브라질과 히스파노-아메리칸의 문학들의 이해 관계에서 다시 한 번: 바로크적 표현의 폭발, 시간의 순환 고리들, 수 세기와 정글의 혼합, 짊어진 어떠한 고독, 착취, 억압을 넘어 세계의 직물 속으로 되돌아가려는 공통된 서사적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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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세글랑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시인이 세상을 발견하는 시인의 소망이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세계의 삶 속에서 공유되어지는 시인의 업적이다.
집필 내내 나는 오랫동안 고뇌했던 시학이란 것의 주제로 계속해서 되돌아갔다: 구술과 서술의 변증법, 다언어주의적인 생각, 현재성과 지속성의 균형, 문학 유형에 대한 의문, 바로크의 호소력, 비-추진적인 상상적 구조. 그러나 이것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시학이란 것이 결코 어떤 실존적으로 완전한 정점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의 충분한 증거물이다. 현실에선, 관계는 모든 작용에 절대적인 것이 아닌 총체적인 것을 향해 분투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이것이 결코 필요하지 않은 어떤 얽힘을 푸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이 시적이고 실용적이며 포기하지 않는 힘을 통해 완전해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즉, 완성되기 위한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