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학 1.2

관계의 시학
에두아르 글리상 Eduard Glissant

*이 글은 출판이 아닌 개인 번역작업이자 예술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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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추방

뿌리(근본)는 방랑과 추방의 공유성을 만들어내는데, 둘 모두의 경우에 뿌리는 결핍을 나타낸다. 우리는 이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와 펠릭스 가타리 Felix Gauttari 는 뿌리의, 심지어 뿌리가 되어지는 막연한 견해들에 대해 비판했다. 한 줄기가 그 모든 것 위에서 빨아올려내고 주변을 모두 말려내는, 뿌리는 독자적인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그들은 스스로 곤경에 처한 뿌리 조직체계인 뿌리줄기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땅 속이나 공기 중으로 뻗치는 조직망을 가졌기에 약탈적인 뿌리없이 영구적으로 장악하지 않는다. 뿌리줄기에 대한 개념이 유지되어진, 이러한 뿌리내림에 대한 관념은 전체주의적 뿌리에 도전장을 내민다. 뿌리줄기적인 생각은 내가 말하는 관계의 시학 전반에 원칙이며, 각 개인의 그리고 모든 정체성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통해 확장되어지는 것이다. 

이 저자들은 유목주의를 극찬하는데, 정착된 삶의 방식과 대조적으로, 아마도 견딜 수 없는 근원에 기반한 법칙으로 존재를 자유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의 도입부에서 회의론자와 유목민 사이의 유사점을 보았고, 또한 “그들은 사회적 유대를 무너뜨린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는 한편으로는 안정된 생활의 방식, 진실됨, 사회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목주의, 회의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칸트의 평행은 뿌리줄기의 개념이 그것의 반-순응주의에 의해 흥미롭게 보이도록 제안하지만,  이것으로부터는 그것이 체제-전복적이라거나  뿌리줄기적인 사상이 세계의 질서를 뒤엎을 수 있는 수용력이 있다고 유추할 수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아마 이 생각에 의해 도전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념적인 주장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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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목민은 자신의 존재 조건에 의해 수없이 결정되지 않는가? 자유를 향유하기보다, 유목주의는 구속성의 우연적 상황들에 대한 복종의 형태가 아닌가? 영토의 일부가 소진될 때마다 움직이 집단을, 순환적-유목주의로 예를 들어보자. 그것의 기능은 순환성을 통해 그 집단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숲의 한 부근에서 다른 부근으로 이동하는 집단에 의해 행해지는 유목주의이다, 카리브해의 섬에서 섬으로 항해하는 아라왁(Arawak) 공동체, 농장으로부터 농장까지 순례하는 고용된 노동자들, 마을에서 마을로의 긴 여행을 다니는 서커스 단원, 특정한 요구에 의해 몰아내지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대담한 행동이나 어떠한 공격성의 작용없이 행해진다. 순환적 유목주의는 불가능한 정착으로부터의 편협하지 않는 형태를 띄운다.

이와 대조적으로 침입하는 유목주의를 예로들어, 흉노족이나 콘스키다도르(16세기 중남미 대륙을 침입한 에스파냐인)의 목표는 그 곳의 거주자를 몰살함으로 땅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신중하지도 순환적 유목주의도 아닌, 아무런 효과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적인 전진법: 화살같은-유목주의다. 그러나 흉노족, 반달족, 서고트족의, 그리고 마찬가지로 콘스키다도르의, 후예들이 일족을 세우고 조금씩 정착해 나가면서 그들의 정복에 녹아들었다. 화살같은 유목주의는 정착을 위한 파괴적인 욕망이다.*

화살같은 유목주의도 순환적 유목주의도 근원은 유효하지 않는다. 정복을 통해 얻어지기에 앞서, 그 침입자들을 “붙잡아두는” 것은 그들 앞으로 놓여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정착된 삶의 방식으로 이끌어지도록 강요받는 것은 순환적 유목민의 현실적인 근절이라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추방의 고통을 참을 수 없고, 방랑에 대한 집착 또한 갈망되지 않는다. 대지와의 관계는 너무 즉각적이거나 너무 약탈적이어서, 주장이나 일직선상의 의식이 영토 안에 새겨진, 정체성의 어떤 선점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 정체성은 공동체가 신화나 계시된 단어들을 통해 영토의 소유할 권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써 성취되어졌다. 이 주장은 실제적인 성취보다 꽤나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논쟁되어져왔던 정당성은 이후에 고통받게된, 추방이나 망명의 규모를 위로해주는 윤곽을 그려낼 여러 형태를 띄우게 된다.


* 이러한 파괴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뒤엎고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의 쇠퇴와 관련하여) 어떤 비옥한 부정적인 요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여기서 우리와 관련이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화살같은 유목주의는 새로운 시대를 낳는 반면, 순환적 유목주의는 내생적이고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복 행위의 순수하고 단순한 정당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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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서양에서 망명에 처한 한 인간은 그 자신이 절망적이거나 비참하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그는, 그에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국가로부터의, 박탈감을 전혀 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군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수많은 그리스 사상가들의 전지를 믿는다면, 어떤 존재의 완벽한 충족을 위해 여정으로부터의 어떤 경험과 망명은 필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플라톤은 (이전에도 그랬고 나중에도 그랬듯이)  영토 내에서의 공동체가 아닌 법률의 합리성이 있는 도시에서 최초로 정통성을 기초로 두려 앞장 섰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 그의 도시 아테네는 이미 “최후의” 탈규제화로부터 위협 받고 있었다.*

이 시대 정체성은 아직 국가가 아닌, (문명으로써 받아들여진) 문화로이어진다.** 콜럼비아 이전의 미대륙과 기독교 이전의 서부, 위대한 정복자 시대의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왕국들은 이러한 시가과 감정을 모두 공유했다. 화살같은 유목주의에 의해 가해진 작용의 이어달리기와 정착된 삶의 방식은 먼저 일반화(로마 제국에 의해 실행 되어졌던 보편성을 식별하려는 추진력)에 대항했다. 따라서, 그 특성은 일반화되어가는 보편적 실재에 저항하고, 순환적인 원들 안에서(지역들 그리고 국가들), 이내 특정한 지역적인 정체성의 감각을 생산해낸다. 조금씩, 문명화의 대한 개념은 타인에게 그들의 반대편에 존재했던 이전의 정체성이었던, 정반대의 것들 하나로 모아주는 것을 돕게 된다, 그들의 이전-정체성은 상대방에 정반대되는 것 밖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플라토의 대화편은  신화의 기능을 대체한다. 후자는 대개 끊임없는 엄밀한 친자관계에 기초하여 영토의 소유의 정당성을 확립한다. 대화편은 정치적 질서의 엄격한 계승을 조직하는 우월적 이유를 밝혀냄에 기초하여 도시의 정의를 증명한다.

** 온전히 서구 문명화의 개념을 통해 사회의 경험은 요약되어진, 확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의, 진화에 즉각적으로 투영시키키려 한다. 누군가 문명이라 말할 때, 즉각적 함축은 문명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이다. 이 생각은 타인에게 문명을 강요하는 열정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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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침공의 이 시기 동안 자기-정의에 대한 열정이 개인적인 모험을 가장하여 드러낸다. 그들의 여정의 경로를 따라서 정복자들은 그들의 죽음 앞에 무너져버린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의 수도는 그들이 가는 곳으로 이동했다. “로마는 더이상 로마에 있지 않고, 내가 있는 어디에든 있다.” 중요한 것은 뿌리가 아니었다. 움직임이었다. 이 방랑에 대한 개념은, 이 광기 가득한 현실의 얼굴 안에 여전히 억제당해지고, 이 끝을 모르는, 너무나도 기능적인 유목주의는 아직도 아무런 형태도 드러내려 들지 않는다. 중심과 가장자리는 등가적이다. 정복자들은 움직이는 것이고, 그에 속한 사람들의 일시적인 뿌리다.

서구는, 그러므로, 그들의 움직임이 멈춘 곳이고 국가들은 세계에서의 그들의 반향을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를 선포했다. 뿌리의 개념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의심없이 도전하려한 편협한 감각 점진적으로 멈춤, 선포, 확장 이 모두를 떠맡도록 요구한다. 서양 역사에서 이 이야기로 되돌아 온 이유는 그것은 세계로 퍼져 나가졌기 때문이다. 그 모델은 쓸모가 있었다. 식민지로부터 자유를 얻은 대부분의 국가들은 타국과의 근본적인 관계를 이루기보다, 하나의, 독자적인 뿌리의 전체주의적인 추진력, 즉 권력에 대한 관념에 의해 형성되려 경향이 있다. 문화의 자아-신념은, 시민들을 야만인에 대항하하게 하는, 이원론적인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서구 국가들이 세워지고 세계에 영향을 주었을 이 시기만큼 방랑에 대한 생각을 확고하게 반대하는 것은 없어 왔다. 

처음 방랑에 대한 국가주의자의 팽창의 현실을 거스르는 생각은, 마치 서구 국가들이 제국적 건물들의 기업으로 앞서왔던 모습처럼, 매우 개인화된 모험들 “안에서” 위장했다. 투르바두르나 랭보의 방랑은 아직 세상에 면밀하고 꽉 찬 경험은 아니지만, 이미 뿌리를 거스르고 싶은 열정적인 욕망의 방랑이다. 이 당시 추방이란 현실은, 흥미롭게도, 언어에 대한 주된 걱정들의 (일시적인) 무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서구 국가들은 언어적 비타협성에 기초하여 건국되어졌고, 추방자가 그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여 가장 고통 받는다는 것을 쉽게 인정했다. 그 뿌리는 단일 언어적이다. 트라바두르와 랭보에게 방랑은 돌아가는 길을 통해서 말해지는 사명이다. 그 관계의 소리는 들었지만, 아직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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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방대한 역설이다, 구약성서, 일리아드, 오디세이, 11-13세기 북프랑스 시인들의 무훈시 chanson de gest, 이슬람의 무용담, 아에네이드, 아니면 아프리카인들의 서사시, 공동체들의 건국대서들 모두는 추방에 관하였거나 종종 방랑에 대한 책들이다. 이 서사 문학은 놀라울 정도로 예언적이다. 그것은 그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 공동체의 명백한 실패나 어떤 경우에서는 스스로를 능가해지는 것을 연관시킴으로써, 그것은 충동(뿌리를 거스르고 싶은 욕망)으로서의 방랑을 이야기하고, 실제로, 빈번하게 경험하게 된다. 신성하고 역사의 표시라고 여겨지는 수집된 책들 안에서는 그들이 너무나도 크게 주장한 것과는 정반대의 발아가 내재 되어있다. 그 때 영토에 대한 바로 그 생각이 관계되어지면, 영토 소유의 합법성에 미묘한 차이가 생겨난다. 이들은 집단 의식의 탄생을 다룬 책이지만, 또한 개인 스스로 문제가 될 때마다 그 곳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불안감과 긴박감을 소개하기도 한다. 일리아드에서 그리스의 승리는 속임수에 달려있고, 율리시스가 그의 오디세이에서 돌아와 오직 그의 개만이 알아보고, 구약 성서에서 다윗은 간통과 살인의 오점을 지니고, 샹송 드 롤란드 Chanson de Roland 는 패배의 연대기이며, 사가 Sagas 에 등장인물들은 저지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낙인이 찍힌다, 이 밖에도 마찬가지로… 이 책들은 거대하고, 교리에 관한, 전체주의적인 확신(그들에게 쓰여질 종교적인 용도에도 불구하고)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들의 시초이다. 이는 역사의 진화에 의해 요구되어지는 뿌리-내림의 추구와 승리를 넘어서는 방랑의 서적이다.

어떤 서적은, 이집트의 사자의 책에서와 같이, 숭고한 방랑에 전적으로 바쳐진다. 비타협적인 공동체를 신성화하려는 기능을 가진 책은 이미 절충된 것으로, 그것의 계시적인 헤메임에서 승리를 안겨준다.*

L’ intention poétique ‘시학 의도’와 Le discours antillais ‘카리브의 담론’ 두 작품 모두에서 나는 서사적인 문학의 측면으로 접근했다- 지금의 작업은 재구성된 메아리나 나선형의 리텔링인 것이다. 나는 만약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건설적 작품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정치력과 같은 주장과 유사한 방향전환의 변증법을 사용하려하지만, 동시에, 타인과 여러 관계를 맺는 뿌리줄기와 현대적인 신성한 형태에서의 모든 공동체의 존재 이유의 토대화, 그것은, 전적으로, 관계의 시학이 될 것이다.**


*헤겔은 그의 Aesthetics(미학)의 제 3권에선, 공동체들의 초기 작업이 아직 순진한 집단적 의식이 자신의 정통성에 대해 스스로를 확신시키는 순간에, 즉, 쉽게 말해서, 토지를 소유하려는 권리를, 자발적으로 나타나게 된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의메에서 영웅적 서사의 생각은 신화의 것과 가깝다. 

**그 신화와 영웅적 서사를 능가할 필요는 도시를 조직하는 정치적 이유 속에서 생겨났다. 서사적 표현은 불명확하고, 불가해한, 천진함의 조건 중 하나이다. 정치적 담론은 명백하다. 능가하는 것은 모순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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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움직임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동등하게 중요한 것 중 하나인) 근원의 유목주의로부터 이끌려져 서구 국가의 정착된 방식의 삶으로, 그리고 발견정복으로 이어졌으며, 신비스러울 정도의 완벽한 여정을 최종적으로 성취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여정의 경로에서, 적어도 항해자, 발견자, 정복자의 위대한 주류를 만들어낸 서구 사람들이 생각하기론, 처음엔 그 스스로를 암묵적으로 하나로 묶어내고 (“내 뿌리가 가장 강하다”) 그리고선 명시적으로 가치들로써 이양된다(“한 사람의 가치는 그의 뿌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정복당하거나 방문한 민족은 정복자가 도입한 탈자연화 과정으로 맞서지게 될 첫 과정의 정체성 뒤로 길고 고통스런 원정에 내몰리게 된다. 정체성을 찾기 위한 비극극적인 변화. 두 세기가 넘도록 전체 인구는 침입자들에 의해 촉발된 정체화 혹은 소멸의 과정에 맞서서 그들의 정체성을 주장해야만 해왔었다. 서구 국가들이 우선적으로 “반대”인 반면,** 식민화된 사람들의 정체성은 주로 “반대가 된”-즉, 처음부터 제한적인 것이다. 탈식민지화는 이 제한을 넘어버릴 때 진실된 일을 해온 것이다.  

자아-인지의 이중성 (한 사람은 시민이거나 외부인인) 은 타인(한 사람은 방문자이거나 방문하게 되고, 누구나 떠나거나 머무르고, 누구나 정복하거나 정복 당해진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타인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는 것은 인식하게 되는 시간까지 개인의 이원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순간부터 타인에 대한 생각은 다원성을 “이해하게” 되면서도, 기계적으로 그리고 여전히 미묘한 계층구조를 일반화된 보편성의 기초로 삼는다. 차이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 전체성의 변증법에 말려들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당신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이 당신을 해롭게 할 수 있다. 내 강점은 여정(나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에 있으며 당신과의 차이는 부동적이고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라며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다른 총제적인 보편성에 정말 들어가기 전에 한 단계의 조치가 남은 것이다. 그리고, 여정의 역학과는 반대로, 이 변증법은 방랑에 대한 생각에 의해 추진되어진다. 


*그것은 우리가 말해왔듯이, 본질적으로 그의 언어에 의한 것이다.

** 문명화에 대한 견해가 정반대의 입장들을 견지한다면, 보편화된 일반화는 세계에서 그들의 행동 원칙, 즉 결승자의  역사 개념에서 이해충돌들을 깨닫게 해줄 원칙이 될 것이다. 최초의 식민지 개척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한 나라의 이름으로 항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으로 항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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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역사의 비범용적 액락으로 출발되는,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통과한, 총체성을 향한 여정을 가정해 보자,
– 영토와 자신에 대한 생각 (존재론적, 이중적)
– 여정과 다른 것에 대한 생각 (기계적, 다중의)
– 방랑과 총체성에 대한 생각 (관계적인, 변증법적)

우리는 이 방랑에 대한 고찰에 동의할 것이다, 이 방랑된 생각은  어제까지만 해도 승승장구였던 조밀한 국가의 주체성을 무너트리면서 조용히 빠져나오게 되고, 동시에, 우리를 부르는 정체성의 새로운 형태의 어렵고 불확실한 탄생으로부터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의, 영토의 확장으로써 아닌 (화살 같은 유목주의) 이 것이 다른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것으로써 경험을 하게 될 때 (순환적인 유목주의를 통해), 뿌리-뽑기는 정체성을 향해 적용될 수 있고 추방은 이득으로써 볼 수도 있다. 총체성의 상상은 어떤 전체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둘러가는 길을 허용한다.

방황은, 그러므로, 예상할 수 있는 악화되어져버린(탈영토화된) 출생지의 상황에 관한 단념이나 좌절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거절에 대한 단호한 행동이나 버려진 것에 대한 통제되지 않은 충동이 아니다. 때로는 타인의 문제를 떠맡음으로써 자신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현대사는, 마르티니크에서 알제로리로 향한,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을 그들과 같은 두드러진 예시 중 하나로 제시한다. 그것은 뿌리줄기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정체성이 더 이상 뿌리로 완전히 시작되지 않고 관계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지식을 일으킨다. 방랑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 상대적인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기에, 그것은 그것과 관련된 것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방랑에 대한 생각은 항상 어느 순간 말해버린 것을 추론해가는 시학이다. 방랑의 이야기는 관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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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같은 유목주의(발견 혹은 정복)와 대조적으로, 추방당한 상황과 대조적으로, 방황은, 정복자의 긴 여정의 행위와 연결되었던 아니던 간에, 모든 극과 모든 대도시의 비실재-로-향하여-있다. 우리는 정복자가 가장 먼저 퍼뜨린 것은 그의 언어임을 거듭 언급해 왔다. 게다가, 뛰어난 서구 언어들은 전달하는 매개-언어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 대도시에서도 종종 발생되어져 왔다. 이에 반해 관계는 다국어적으로 말해진다. 경제적 힘과 문화적 압박의 한계를 뛰어넘어, 관계는 어떤 단일-언어적 의도의 전체주의에도 정당하게 반대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고통들과 세계의 부당함을 참아야만 했던 자들의 괴로움과 선입견들로부터 단절되있어 보인다. 그들의 방랑은 사실상 부동적인 것이다. 그들은 깊은 수심에 잠겨보지 못했고 뿌리-뽑기의 사치를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의 일정-불변들의 것 중 하나는 이제부터는 근원들에 대한 지식이 관계의 직관으로 그들에게 전달되어질 것이다. 여행하는 것은 더이상 힘의 중심지가 아닌 즐거움을 주는 시간을 누리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존재론적 집착은 관계의 흥밋거리에 길을 내준다, 그것의 기초적이이고 종종 이것을 만화화된 형태에서 이 것은 관광여행이다. 뒤로 남겨졌던 이들은 모두에게 공유되어진 세상의 이 열정으로 흥분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내재적인 추방으로의 격심한 고통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나는 자신의 나라 안에서 다른 사람의 압제를 받는 그들의, 남아프리카의 흑인들과 같이, 물리적 상황을 내제적인 추방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의 해결책은 가시적이고 결과 또한 ‘무력만이 이를 저지할 수 있다고’ 결정되어지 때문이다. 내재적인 추방은 주변 지역의 관계에 대한 해결책이 그 지역 사회 전체의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적어도 아직 동의가 되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개인들을 송두리째 뽑아버린다. 결정들로 불안정하게 윤곽이 드러난, 이러한 해결책들은 여전히, 결과적으로 소외되어진, 소수의 특권이다. 내재적인 추방은 이러한 사유화된 울타리 밖으로의 여정이다. 그것은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고 증상을 악화시키는 방랑에 대한 생각으로의 도입부이다. 대부분의 경우 개인이 소비되는 부분적이고 즐거운 보장들로 전환된다. 내재적인 추방은 물질적인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이것은 고뇌를 진정으로 벗어나게 해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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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은 한 사람의 자의식을 서서히 야위게하려 하는 반면에, 방랑에 대한 생각은-그것에 관계되어지는 생각-대게 자의식을 강화시킨다. 유대인들의 방황은, 박해받은 방랑은, 적어도 한 명의 관찰자에게, 그들이 현재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했을 때보다 그들의 자의식을 풜씬 더 강화시켰다는 사실이 가능해 보인다. 추방당한 유대인들의 추방 당해짐은 방랑의 사명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구체적인 땅(영토)에 의해 그들의 의지는 사실상 쇠약해져간, 그들의 이상적인 땅에 대한 명확한 예시는 선택되어지고 정복되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방랑의 상상적인 예측을 통해 소통되어질 수 있지만, 추방자들의 경험은 공유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방랑에 대한 생각은 비정치적이지도 정체성에 대한 의지에 상충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특정한 주변 환경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것 이외에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만일 그것이 영토적 편협성이나 독자적 뿌리를 가진 약탈적 영향(오늘날의 식별 과정을 어렵게 만들었을)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관계의 시학 안에서, 방랑하는 누군가는 (더이상 여행자, 발견자, 정복자도 아닌) 세계의 총체성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결코 성취할 수 없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세상의 위협적인 아름다움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방랑하는, 그는 세계를-명백하고 투명한 것으로 요약하는 이 보편화된 칙령을-맞서내고 저버리며, 그것이 하나의 전제된 감각과 하나의 운명임을 주장한다. 그는 그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세계의 그 비좁은 빈틈으로 뛰어들었다. 일반화는 전체주의다:세계로부터 그것은 보고서들의 한 쪽, 생각의 한 묶음만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지고 하나의 본보기로써 내보내짐으로써 강요하려고 한다. 방랑된 생각을 하는 것은 전체성을 마음 속에 그리지만, 요약내거나 소유하려는 어떠한 주장들도 기꺼이 포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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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서적들은 우리에게 그것의 신성한 차원은 항상, 방랑의 변화들로 그늘진, 뿌리의 신비함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현실에서 방랑의 사고는 신성함의 굽혀지지 않음과 퇴색되어지지 않는 존재를 추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화의 힘을 이해한 플라톤이 불명료함을 이끌어내는 시인들을 공화국 외 지역으로 유형되어지길 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깊이를 잴 수 없던 단어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이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곡류 속에서, 이 심해성 단어로 되돌오는 중이 아닌가? 이 방랑에 대한 생각이, 인류가 신화의 부전도성(이전에는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던)과 정치철학의 회절되었던 통찰력을 변형해내어, 호머와 플라톤, 헤겔과 아프리칸 그리옷(Griot)의 조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난 우리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또한 이미 지하에서의 방식으로 반체제 작업하고 있는) 관계의 다른 다육성이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한다, 이는 갑작스럽게 다른 길들을 펼쳐 보이고 이내 어떤 관점에서 일어날 법한 어느 것이건 단순화되어진, 자기민족중심적인 배제들을 바라잡아 줄 것이다. 

*

적어도 문학에 관련된 한 (내가 판테온을 세울 필요 없이, 이 작품들이 거절한 고립성으로), 두 개의 현대적인 작품의 줄기가 있는데, 그것은 방랑과 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크너(Faulkner)의 작품, 왠지 신학적인. 그 집필은 남부-그러기에 미국에서 그곳은 명백하기에-에서의 뿌리를 캐내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뿌리줄기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확실성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그 관계는 비극적이다. 근원을 둘러싼 논쟁, 즉 그 뿌리의 위치의 신성한-하지만 그에 따라 말할 수 없는-수수께끼 때문에, 포크너의 세계는 현대적인 관계의 시학에서 흥분 넘치는 순간들 중 하나를 나타낸다. 한 때는 그런 세계가, 카리브해와 중남미로 소명을을 확산시켜나도록, 더 멀리 뻗쳐나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은 배제되어짐을 느낀 누군가의 입장에서 무의식적인 좌절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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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존 페르스(Saint-John Perse)의 변칙적인 작업은, 움직이는 것을 찾아서, 절대적인 감각으로 가는 것이다. 너무 많은 말들을 함으로 탈진되어지는 보편성의 온전한 찬양-총체성으로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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